아이폰은 이름이 많지 않았다. 애플은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와 달랐다. 아이폰은 다양한 가격대의 파생 모델 없이 프리미엄 단일 모델 전략을 고수해왔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늪처럼 빠져나가기 힘든 애플의 생태계, 고객 충성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 아이폰은 세 가지 이름으로 나왔다. ‘아이폰XS’·’아이폰XS 맥스’·’아이폰XR’이라 쓰고 ‘아이폰텐에스’·’아이폰텐에스맥스’·’아이폰텐알’이라고 부르는, 쉽지 않은 이름으로 말이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은 정체됐고, 아이폰은 점유율 싸움에 부침을 겪었다. 그래서 애플이 택한 건 판매량이라는 살을 내주고, 매출이라는 뼈를 취하는 전략이다. 제품 평균판매단가(ASP)를 높이는 방식이다. 실제로 지난해 고가의 아이폰X은 애플의 매출을 견인했다. 이 전략의 맹점은 판매량이 줄어들 것을 감안하되 소비자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매출과 제품 가격 사이의 균형을 잡는 거다. 또 기존 가격대에 제품을 구매하던 소비자의 이탈을 막을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아이폰XR은 바로 그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모델이다. 그 가격 균형점이 적절했는지는 현재 논란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애플에 있어 아이폰XR은 아이폰XS 시리즈 이상으로 중요한 제품이다.
성능은 같고, 디테일이 다르다
아이폰XR에는 ‘보급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곤 하지만, 실제로는 ‘아이폰8’과 비슷한 위치의 제품이다. 플래그십 모델인 아이폰XS 시리즈와 같은 성능을 내면서도 디스플레이 소재 및 카메라 등 몇 가지 사양을 달리해 단가를 낮췄다. ‘아이폰X’ 이후 시작된 베젤리스 화면과 ‘페이스아이디’, 제스처 방식의 조작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프로세서는 아이폰XS와 마찬가지로 ‘A12 바이오닉’ 칩이 적용됐으며, AI 전용 가속 칩 ‘뉴럴 엔진’이 강화됐다. 이번 세대 아이폰에 똑같이 탑재된 ‘A12 바이오닉’에는 머신러닝 기반의 모바일 생태계 잠재력을 끌어내겠다는 애플의 의지가 담겨있다. 메모리는 아이폰XR이 3GB, 아이폰XS가 4GB로 차이가 있지만,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디스플레이와 카메라다. 먼저, 디스플레이의 경우 OLED가 적용된 아이폰XS 시리즈와 달리 LCD가 적용됐다. 6.1인치 크기로, 5.5인치 ‘아이폰8 플러스’보다 커졌지만 베젤리스 디자인을 적용해 크기는 아이폰8 플러스보다 작다. 아이폰XS는 5.8인치, 맥스는 6.5인치 OLED가 적용됐으며 제품 크기도 화면 크기에 비례해 아이폰XS, XR, 맥스 순으로 커진다. 소재의 차이는 성능과 디자인에 영향을 미친다. OLED와 LCD의 차이는 디스플레이 소자가 자체 발광하냐, 백라이트가 필요하냐에서 나타난다.
OLED VS LCD
OLED는 백라이트가 필요 없기 때문에 명암비에 강점이 있다. 아이폰XS 시리즈의 명암비는 1000000:1이다. 아이폰XR은 1400:1이다. LCD는 백라이트 특성상 어두운색을 표현할 때 한계가 명확하다. 색을 표시하는 액정 패널과 빛을 내는 백라이트가 분리돼 있어 까만색이 온전히 까만색이 될 수 없다. 액정 뒤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때문이다. 대신 OLED는 장시간 사용할 경우 화면에 잔상이나 얼룩이 남는 ‘번인(burn-in)’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아이폰XR에 적용된 LCD는 XS만큼은 아니지만 높은 색상 정확도 수준을 갖췄으며, 명암비의 물리적 한계가 있지만 밝은 부분은 더욱 밝게 어두운 부분은 더욱 어둡게 표현하는 HDR 콘텐츠를 지원한다. 또 빛샘 현상을 이전 세대 아이폰보다 줄였다.
백라이트 유무의 차이는 제품 두께와 화면 가공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이폰XS 시리즈와 아이폰XR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점 역시 두께와 화면 베젤이다. 아이폰XR은 두께가 8.3mm 수준으로 7.7mm XS 시리즈에 비해 두껍다. 두 제품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XR이 뚱뚱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베젤에서는 차이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XR의 베젤은 XS 베젤에 볼드체를 적용한 느낌이다. XS 시리즈는 디스플레이를 기기와 연결하는 가장자리 모듈을 베젤 안쪽으로 말아 넣어 베젤을 줄였지만, XR은 LCD 특성상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면 가장자리 곡면은 XR 역시 XS 못지않게 잘 다듬었다. 서브 픽셀 단위까지 곡면 공정을 적용해 계단 현상이나 색상 왜곡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쉬운 점은 해상도다. 아이폰XR은 1792×828 해상도가 적용됐다. 화면이 더 작은 아이폰XS(2436×1125)보다 해상도가 낮다. 아이폰8(1334×750)보다는 높지만 아이폰8 플러스(1920×1080)보다는 낮다. 화소 밀도는 아이폰8과 같은 326ppi 수준이다. 의식하지 않고 봤을 땐 XS와 비교해도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느껴진다. 특히 화면이 제품에 척 달라붙은 느낌이 덜하다. 또한, 화면에 가해지는 압력 정도를 감지해 추가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3D 터치’ 기능이 빠졌다. XR 디스플레이는 전체적으로 잘 만든 LCD지만, 원가 절감을 위해 조금씩 희생된 부분이 아쉽다.
듀얼카메라 VS 싱글카메라
카메라 역시 XS와 XR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점 중 하나다. XS에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듀얼카메라가 적용됐다. 반면 XR은 카메라가 하나만 달렸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싱글카메라로도 인물사진 모드를 구현했다. 인물사진 모드는 배경을 날려주고 사진에서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아웃포커싱(보케) 기능이다. 사진을 DSLR로 찍은 듯한 효과를 보여준다. 기존 아이폰은 물리적으로 카메라 두 개를 써서 깊이 정보를 파악해 배경과 피사체를 분리하는 식으로 인물사진 모드를 구현했다. 카메라 하드웨어에 의존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XR은 구글 ‘픽셀폰’처럼 AI(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인물사진 모드를 구현했다. 인물사진 모드로 사진을 찍을 때 A12 바이오닉 칩의 뉴럴 엔진이 머신러닝 기술을 이용해 얼굴을 빠르게 감지하고 배경과 분리해 아웃포커싱 효과를 적용한다. 이처럼 인물사진 모드를 구현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XS 시리즈로 찍은 사진과 XR로 찍은 사진은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다. 무엇보다 렌즈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거리감과 왜곡 정도가 크게 차이 난다. XS 시리즈에서 인물사진 모드는 망원렌즈를 중심으로 촬영된다. 멀리 있는 사물을 가깝게 담는다. XR은 광각렌즈를 사용한다. 같은 거리 안에서 더 넓은 범위를 찍는다. 가까운 것은 더 가깝고 크게, 멀리 있는 것은 더 멀고 작게 나타나도록 하기 때문에 광각렌즈에서는 왜곡이 발생한다.
XS와 XR로 찍은 사진을 비교해보면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렌즈의 차이 때문에 같은 거리에서 같은 사람을 찍어도 XS는 더 가깝게, XR은 더 멀게 찍힌다. 동일한 거리감과 구도로 담을 경우에 XR에서는 왜곡이 발생한다. 우리가 셀카를 찍을 때 ‘얼짱 각도’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 꽂아 찍으면 카메라에 가까이 있는 눈은 크고, 멀리 있는 턱은 작고 갸름하게 찍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AI 기술을 이용해 싱글카메라로도 자연스럽게 배경을 날려주지만, 렌즈의 한계 때문에 XS의 인물사진이 좀 더 자연스럽게 찍힌다.
가장 큰 차이는 XR에서는 사람을 제외한 피사체는 인물사진 모드로 찍을 수 없다는 점이다. 얼굴을 먼저 감지하고 인물사진 모드 효과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알고리즘이 구현돼 있기 때문이다. 추후에 알고리즘이 더욱 정교해지면 싱글카메라로도 모든 피사체에 아웃포커싱 효과를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전면 카메라는 세 모델 모두 차이가 없다. 페이스아이디를 구현하기 위한 ‘트루뎁스 카메라’ 시스템이 적용됐으며, 사양도 동일하다. 셀카로도 인물사진 모드로 찍을 수 있다. 여러 장의 사진을 합성해 명부와 암부 표현을 살려주는 ‘스마트 HDR’ 기능도 동일하게 적용돼 있다.
보급형 논란은 고가 정책의 반작용
이 밖에도 XS 시리즈와 XR은 방수 방진 등급, 후면 글래스 강도 등 세세한 부분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성능은 같다. 플래그십급 성능을 갖춘 XR을 보급형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아이폰XS 시리즈의 높은 가격 때문에 고민하는 이용자는 아이폰XR로도 충분히 만족할만하다. 보급형 논란은 애플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사실 아이폰 가격은 지난해와 비교해 비싸진 게 아니라 스펙트럼이 넓어졌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확하다. 아이폰X과 아이폰XS를 놓고 봤을 때 저장 용량이 같은 모델은 가격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저장 용량 옵션을 기존 256GB에서 512GB까지 늘리고, 화면이 더 큰 맥스 모델을 추가하면서 최고 사양을 선택했을 때 가격이 198만원까지 뛰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20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은 소비자의 심리적 가격 저항선을 넘어섰다. 애플은 선택지가 늘어났을 뿐이라고 항변하겠지만, 소비자의 눈높이는 최고 사양의 플래그십 모델을 향한다. 이 때문에 200만원의 프레임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는 아이폰 10주년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아이폰의 미래 아이폰X, 아이폰의 현재를 정립한 아이폰8이라는 스토리텔링이 고가 논란과 보급형 논란을 억제해줬다. 하지만 2018년 아이폰에는 애플의 자신감만 남아있었다.
200만원짜리 아이폰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애플이 야심 차게 내놓은 XR은 자연스럽게 가격이 더 저렴한 보급형 라인으로 비치게 된다. 기존 아이폰 가격을 원하는 이용자에게 XR을 내미는 전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보급형도 99만원을 넘는 비싼 아이폰이라는 아우성만 남는다. 소비자 심리를 세세하게 살피지 못하고 이해타산적으로 고가 정책을 내놓은 애플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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